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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7 08:34
상주 외남 광덕사(廣德寺)-김광희[문화관광해설사]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5,642  
상주 외남 광덕사(廣德寺)
상주시 외남면 구서2길 138

상주에 들어온 백두대간이 천왕봉을 지나 봉황산(鳳凰山, 740.8m)과 웅이산(熊耳山, 795m) 사이에는 대체로 비산비야(非山非野) 하다고 알려졌으나, 그 가운데 백학산(白鶴山, 615m)은 우뚝하다. 이곳에서 동남으로 뻗어내려 곧장 멈추어 섰으니 바로 서산(西山, 513m)이다. 서산의 옥봉(玉峰) 자락 아래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저 멀리 노음산(露陰山, 728.5m)을 바라보면서, 구서원(舊書院) 마을 뒤 아담하고 소박하게 앉은 도량이 있으니 전통사찰 광덕사(廣德寺)이다.

구서리(舊書里)는 상주군 외남면의 지역이었다. 영천자 신잠 목사가 상주에 창건한 18개 서당 중 수양 서당(首陽書堂)이 1551년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1633년에 옥성서원으로 승원(昇院) 되었으나, 1648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신촌리로 옮겨 세운 후, 옛 서원이 있었다고 하여 구서원이라고 했으며, 1914년 고곡리(古谷里)와 안령리(安令里)를 합하여 구서리라고 했다. 사찰이 소재하는 마을은 구서 2리로 면도 101호선에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오른쪽에 규모가 큰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회관과 마주하는 비(碑)의 명문(銘文)에는「大道柳承秀先生功德碑(대도류승수선생공덕비)」라 적고 있다.

마을 뒷자락 서산은 옛날 상주 지방에 노아(Noah)의 홍수와 같은 대홍수가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산 하나가 물 위에 둥둥 떠내려가다가 멈추는 이상스러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여기에 많은 전설(傳說)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지만 돛단배의 돛대처럼 우뚝 솟아 청리·공성·외남면을 경계로 하고 있는데, 흔히 지역민들은 이산을 팔방산(八方山)이라고도 한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서산은 한 가지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라 하는데, 남과 북에서 보면 문필봉(文筆峯)이다.

또 하나는 예부터 서산은 명산(名山)이라 알려졌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쫓아 묘향산에서 내려오는 서산대사가 산 이름에 끌리어 이 산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상산지에는 옛날에 서산사가 있었다고 전하는데,「西山寺 在靑里面西山中凹處舊安四溟大師眞影州牧李漢膺葬其親遂廢寺(청리면 서산 중복 아늑한 곳에 있으니, 전에 사명대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상주 목사 이한응이 그의 친장을 이곳에 하니 드디어 폐사되었다.)」라 적고 있다. 이처럼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 명승을 이루고 있는 곳이 광덕사(廣德寺) 부근이다.

조용한 농촌 마을의 좁은 골목을 지나 얕은 산줄기로 오르면, 왼편에 동래정씨(東萊鄭氏) 평리공리파(評理公嫠派) 후손인 22세(世) 행경(行卿)을 추모하고, 종원(宗員)의 돈목을 위해 1897년(丁酉) 여름에 창건한 외남 문중의 경서재(景西齋)가 길손을 반긴다.
더 오르면 외딴집을 만나고, 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이정표를 지나 ‘광덕사’라는 표지석에 이어 높다란 단 위에 앉은 대웅전을 맞는다.

기창(基昌) 배순강(裵順江, 1879~1956) 선생이 덕을 넓게 펴는 불교 사원으로, 일제 말엽에는 나라의 광복과 백성들의 수모를 조금이나마 들어 주고, 제도 중생(濟度衆生)을 목적으로 광제창생(廣濟蒼生) 포덕천하(布德天下)의 도량으로 1927년 창건하였다. 본관은 성산(星山), 자(字)는 영탁(永倬), 기창(基昌)은 그의 호(號)이고, 별호는 망월퇴(望月退)이다. 도호(道號)는 청임(淸任) 또는 철관도사(鐵冠道士)이고, 당호(堂號)가 해운당(海雲堂) 이다.

선생은 외남면 구서리 출생하여, 14살 때 동학에 입도하였고, 16살에 동학 농민혁명에 가담하였다. 동학이 천도교로 바뀜에 따라 상주지구 접주로 활약하다가 1920년 광덕사 자리에 동학의 사원을 건립하고, 제자들과 함께 포교에 힘써다가 1956년 타계하시니, 아들 배경수 스님에 이어 손자인 월하(배원달) 스님이 주지로 있다. 2014년 대웅전을 개축하였으며, 법화종으로 상주 14곳 중의 하나인 전통사찰(1988.7.21)로 등록되었다.

대웅전 뒤로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면 너덜이 석성(石城)처럼 내려온 끝자락 네모진 큰 암석에, 높이 185cm, 폭 173cm 정도의 자연석 한 면을 다듬어 음각한 선명한 선각상(線刻像)이 있는데, 정확한 조성 경위나 시기 작자 등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미륵당이라 부르고 있는데, 부처님은 아닌 것 같으며 좌우 대칭(左右對稱)이고, 머리에는 모자를 쓴 모양과 옷 등으로 보아 동학과 관련된 상(像)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사찰 앞 얕은 계곡으로 몇 계단을 내려서면 자연석 위에 세워진 아담하고 정갈한 한 기(基)의 비(碑)를 만난다.
비수(碑首) 아래 음각된 내용은
「崔水雲大先生道德淵源永世不忘碑, 裵處士順江字永棹號海雲星山人
月色千年白 松聲奏琴寒 碎然一片石 無語立空壇(달빛은 천년토록 밝고 솔바람의 거문고 연주 차갑다. 부서진 한 조각 빗돌만이 말없이 빈 제단에 서있네.)」인데, 왼편 측면에 7명, 뒷면에 38명의 명단(名單)이 음각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淸風后人 金奎浩 謹書 鄭亮鎭 東萊이고, 오른편 옆면에는 「丙戌 丁月 十五日 立 鄭大鎭 東萊」이다. 이는 모두가 동학에 입도하였고, 광덕사 창건에 동참한 분이라 한다. 1946년 1월 15일 최수운 대 선생 영세 불망비를 세우고, 매년 4월 5일 천제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학에 바탕을 둔 불교 사원의 창건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근대 상주 동학 혁명사에 중요한 사료이며, 광덕사 기문과 제자 손광호(孫光浩)가 찬(撰)한 해운당 실기가 전한다.

한남금북정맥 상 천안(天安)의 광덕산(廣德山, 699m) 자락 아래 소재한 ‘광덕사(廣德寺)’는 1,290년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천연기념물 제398호「호두나무」로 명성을 치르고 있지만, 상주 광덕사는 동학과 관련된 사찰로 전국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근에 수령 750년의 하늘아래 첫 감나무와 곶감공원, 옥성서원, 임난시 전투현장인 안령(鞍嶺)과 5부자(父子) 순직(殉職)을 기린 현충비, 주형원 효자비, 최초 사설의료원인 존애원, 신앙고백비 등이 있어 언제나 볼거리가 많은 고장이며 특히, 감 익는 가을은 더더욱 아름다운 곳이다.

광덕사 입구에서 시작하는 서산 산행은 소요시간 2시간30분 정도로, 바위로 이루어진 전망대에 서면 서쪽으로 백두대간 큰 산줄기가 이어지고, 남쪽에는 웅이산이 있으며, 동으로는 여남 지맥이 이어가는데, 기양산, 수선산, 갑장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조망권(眺望權)을 자랑하는데, 남으로 이어진 산줄기에는 서산 봉수(西山烽燧)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