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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22 08:38
백악산(百岳山) 자락 상주 석문사 보굴암(寶堀岩) - 김광희[문화관광해설사]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6,640  

백악산(百岳山) 자락 상주 석문사 보굴암(寶堀岩)
상주시 화북면 문장로 2533-49

개울 옆에 한 길이 훨씬 넘는 큰 돌이 서 있어 선돌 또는 선바위로 부르던 것이 마을 명이 되어 입석리(立石里)라 하는데, 백두대간 백악지맥 상 백악산(百岳山, 858m) 북동쪽 자락으로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이다. 입석보건진료소 옆 계곡으로 들어서면 청정한 계곡물이 언제나 맑은소리를 들려주는데, 조금 더 들어서면 점점 높아지면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보이는 평평한 곳에, 기구하고도 애절한 사연이 전하는 석문사(釋門寺) 보굴암(寶堀岩)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서유영(徐有英)이 저술한 야담집(野談集) 금계필담(錦溪筆談)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 중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의 딸과 김종서(金宗瑞)의 손자가 금지된 사랑을 했다는 설화가 나오는 곳이다. 그리고 이 책은 등장하는 각 편의 주인공들의 신분과 시대순에 따라 작품들을 수록하는 체제로 되어 있는데, 제왕(帝王)과 왕비(王妃), 문신(文臣), 이인(異人), 양반층 여인, 기생, 하층 여인, 무인 및 장사(壯士)의 순으로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나열하고, 각 인물은 대체로 시대순으로 배열했는데, 단종(端宗)부터 순조(純祖)까지 걸쳐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빠진 이야기를 모았다는 뜻인 좌해일사(左海逸事)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으며, 2011년「공주의 남자(KBS2)」로 제작된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큰 바위 한쪽 면에 새겨진 석문사(釋門寺) 창건기를 옮겨보면
「석문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1리(일명 옥량동)의 백악산(百岳山)에 있었던 보굴암(寶堀岩)의 신비로운 역사를 이어받아, 1990년 이굉용(李宏龍) 스님이 창건한 아미타불 기도 도량이다. 굉용 스님은 아미타사상(阿彌陀思想)의 세계적 권위자인 정토선(淨土禪)의 창시자인 중국 관정법사(寬淨法師)에게 득도하였다.
백악산 보굴암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안연법을 깨닫게 하는 은밀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보굴암은 조선 시대 김종서(金宗瑞 1390~1453)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사이에 있었던 불행한 역사와 인연의 신비가 세조(世祖 1417~1468)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종의 동생인데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로서, 문종이 죽고 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의 보호 책임자인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스스로 영의정이 되어 왕위를 강탈한 대군이다.

김종서는 문종 때 우의정, 좌의정이 되어 나이 어린 단종을 왕으로 모셨으나 1453년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지략이 뛰어난 김종서를 제거하기 위하여 그의 집으로 직접 가서 김종서를 살해한 다음 그의 두 손자인 승규(承珪), 승벽(承壁)까지 죽였으나, 장손인 승규는 극적으로 탈출하여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백악산(百岳山) 깊은 산중 보굴암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수양대군은 왕위에 오른 다음 죽을 때까지 철권 강압 통치를 감행하였으며, 세조의 독재정치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딸이 끝내 세조의 노여움을 사서 궁궐 박으로 쫓겨나게 되었는데, 극적으로 살아남은 김종서의 손자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궁에서 쫓겨난 이후 수소문한 끝에 자신이 사랑하는 낭군이 백악산 보굴암에 숨어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보굴암으로 찾아와 부부로 인연을 맺게 되어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세조가 죽은 뒤 그들은 보굴암을 떠났는데 그때부터 보굴암은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처로 이름이 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38년 김만성이 이곳에다 초암(草庵)을 짓고, 일제 말 암울하고 흉흉하던 시절의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기도처로 삼기도 했다. 보굴암의 전설적인 내력을 계승하여 오늘날의 석문사가 창건된 것은 굉용 스님이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의 선몽으로 영험한 계시를 받아 창건하게 되었는데, 굉용 스님의 꿈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타나 가사를 곱게 입은 부처님이 손수 군용 지프차를 운전해 와서 굉용 스님을 옆에 태우고, 황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길을 달리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다가 비탈길을 내려 어느 들판에 지프차를 세우더니 부처님이 손수 땅을 파헤친 순간 땅속에서 청룡과 황룡이 불을 내 뿜으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그때 부처님이 그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흰 바위로 뒤덮인 산을 가리켰는데, 그 산은 거북 모양의 큰 바위산이 보였다.

부처님은 거북 모양을 한 산을 향하여 차를 몰았는데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에서 길이 열리고 산길로 올라온 부처님은 차에서 내려 어느 바위 굴속으로 들어가더니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팔베개를 한 채 모로 누우셨는데, 순간 총과 칼로 무장한 수많은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부처님을 에워싸며 호위를 하였다. 잠시 뒤 보굴암 아래 작은 초가 한 채가 보이고, 그 집 마당에는 노인 내외가 키에다 쌀을 담아서 키질을 하고 있었는데, 보굴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쌀을 깨끗하게 손질하는 중이라고 했으며, 눈처럼 흰쌀을 여러 섬 키질하여 수레에다 싣고 보굴암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굉용 스님은 하도 꿈이 신비스럽고 생생하여 꿈에서 본 그 길과 들판, 바위산을 물어 물어서 길을 나섰는데, 난생처음 보는 곳이었으며, 발길이 닿는 곳이 화양동 계곡 송면 입석리 들판이었고,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누워 계시던 곳까지 왔는데, 그곳이 바로 보굴암 자리였다. 그리하여 이곳에다 석문(釋門) 즉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아가는 문이란 뜻의 석문사(釋門寺)를 창건하여, 아미타불 기도 도량으로 석문(釋門)을 열었다. 불기 2562년(2018) 10월 30일」로 적고 있어 설화(說話)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백악산 여러 명승과 함께 옥량 계곡 상류의 중복(中腹)에 거대한 층암이 마치 지붕과 같이 생겨 있고, 그 안에 굴이 있다. 이름 하여 보굴(寶窟)이고, 입구에 석문동(釋門洞)이라 한 암각서가 있으며, 보굴암벽 아래에는 약사여래를 모셨다. 보굴암 아래쪽에 있는 천연적인 돌다리 옥량(玉樑)은 높이 3m, 길이 20여m로 밑에 폭포가 있어서 장관을 이루는데, 대들보같이 폭포 위에 걸쳐져 있는 최고의 천상작품이다